파이토테라피와 녹색의학이라는 용어보다는 허브가 많은 사람들에게 더 친숙할 것이다. 그런데 그 허브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통 '허브가 뭔지 아세요?'라고 하면 로즈마리, 페퍼민트 같이 익숙한 허브 이름을 대거나, 향신료라고 대답하거나 향이 강한 식물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허브의 정의가 뭔지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허브는 잎이나 줄기가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거나 향과 향미(香味)로 이용되는 식물이다. 원산지가 주로 유럽, 지중해연안, 서남아시아 등인 라벤다, 로즈마리, 세이지, 페퍼민트, 타임, 오레가노 뿐만 아니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단오날에 머리를 감는데 쓰이던 창포와 양념으로 유용하게 쓰는 마늘, 파, 고추 그리고 민간요법에 쓰이던 쑥, 익모초, 결명자 등을 모두 허브라 할 수 있다. 허브란허브란 라틴어의 "푸른 풀"을 의미하는 Herba에서 출발하며 "잎, 줄기와 뿌리 등이 식용, 약용에 쓰이거나 향기나 향미가 이용되는 식물의 총체" 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허브 [Herb] (농식품백과사전) |
사전에 나온 것과 같이, 허브는 과학적으로 그 효능이 검증된 화학 성분을 가진 식물(또는 식물성 원료)을 일컫는다. 녹색의학은 그런 식물을 통해 신체의 자가 수복력을 도와 전체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국어 사전에도 나와있듯이, 인류가 예로부터 허브를 사용해왔다면 대체 언제부터 사용해 온 것일까? 이 것은 의학 발전의 역사와 함께한다. 선사시대 때부터 인류는 식물의 뿌리나 껍질 등을 약재로 써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족의 연장자들, 또 샤먼들은 축적된 약초학 지식을 통해 병을 다스리거나 자연에게 빌어왔을 것이다. 또한 BC 2700 ~ BC 1600년 경의 이집트 미라를 만들 때에도 방부처리를 위해 몰약(Myrrh)은 필수적인 허브였다. 함무라비 법전과 고대 중국의 처방전에서도 허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세기경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BC 490? ~ BC 430?)는 소크라테스 이전 시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 가운데 하나로, 철학 이외의 종교, 정치, 생물학, 의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4원소설이다. 엠페도클레스 이전 밀레토스 학파의 탈레스는 세상 만물의 근원을 물로,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로, 헤라클레이토스는 불로 설명하려했지만, 엠페도클레스는 물, 공기, 불, 흙을 서로 동등한 위치를 갖는 세상의 '근원들'로 생각했다. 이 네 원소들은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것으로 새로 생성되거나 소멸, 변화하지 않는다는 이 가설은 약 2000년 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엠페도클레스에 영향을 받은 히포크라테스(BC 460? ~ BC 377?)는 고대 의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현대에서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의학의 신인 아클레오피오스를 섬기는 제사장이자 의사였고, 따라서 그는 그들로부터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배웠다. 당시 환자들은 신전에서 기도와 제사를 통해 병이 치료된다고 믿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주변 국가를 여행하며 의술에 대한 지식을 쌓고 고향으로 돌아와 의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 의학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인체의 생리나 병리에 대해 체액병리설(Humourism)을 주장했는데, 인체는 불, 물, 공기, 흙의 4원소로 되어있고, 인간의 건강은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초기에는 물이었다)의 네가지 체액의 조화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이 네가지 액이 조화로운 상태는 '에우크라지에', 조화가 깨진 상태를 '디스크라지에'라 하고 조화가 깨지면 병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또한, 병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여러 증상, 그 중에서 발열을 병이 치유되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았으며, 병적 상태에서 회복해가는 것을 '피지스'라 부르며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 피지스를 돕거나 적어도 이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 시기 동양에서, 지바카코마라바카(BC 500년경)는 북인도의 명의 힝카라 밑에서 의술을 공부하였는데, 공부가 끝날 무렵 스승인 힝카라가 이 나라에서 약에 쓰이지 않는 풀을 캐어오도록 지시하자 전국을 돌아다니다 돌아와서는 어떤 풀이라도 모두 약으로 쓸 수 있다고 답하여 크게 칭찬을 받고 인도 제일의 의사라는 명예를 얻었다.
종교적인 부분도 살짝 짚고 넘어가자면, 기독교 성경에 보면(천주교, 동방정교, 그리고 개신교를 막론하고)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바치는 예물로 황금, 유향(frankincense), 그리고 몰약(myrrh)을 가지고 먼 길을 떠난다. 성경에 나오는 허브들은 13종이나 되는데, 천주교 미사에서 피우는 향이 바로 그 신성을 상징하는 유향이다.
허브와 녹색의학을 얘기할 때는 '약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AD 30 ~ 90)를 빼놓을 수 없다. 로마 제국의 그리스계 식물학자(본초학자)이자 약학자인 그는, 4760종에 달하는 허브와 360가지의 효능을 식물의 정명, 이명, 산지 등을 기재하여 용도별로 분류한 De Materia Medica를 저술하였다. De Materia Medica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유럽과 아라비아에 걸쳐 통용되었으며, 16세기까지도 약초학의 권위서였다.
로마의 갈레노스(AD 129 ~ 199?)는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체액병리설)을 신봉하였지만, 동물 해부를 통해 인체 내부 장기의 기능을 면밀하게 살펴 해부학, 병리학, 치료학, 약리학 분야에 체계적인 저술을 남겼다. 갈레노스 약전이라 불리는 서른 권의 저서에는 약제의 제조와 투여량이 기록되었고, 천오백 년 동안 약전의 표준으로 통했다.
아라비아 반도의 상인들이 유럽과 아시아를 이으며 무역으로 돈을 벌어들인 뒤로 아라비아에서 연금술이 성행했다. 이는 과학 전반의 발전을 불렀고, 10세기 페르시아의 이븐 시나(AD 980 ~ 1037)는 의학자이자 약사로 치유의 서와 의학 전범을 출간하였다. 의학 전범은 17세기까지 유럽 의학의 기본서로 사용되었다. 또한 그는 에센셜 오일의 증기추출 기술을 개발하였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또 한번 의학은 발전했고, 이런 허브의 수요에 의해 중세 유럽은 아라비아 무역상들의 좋은 거래처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15세기, 유럽이 인도로 가는 직항로를 찾기위해 나서면서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함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나아가 신대륙에 당도했고, 로벨리아와 에키나세아 같은 허브를 유럽으로 들여온다. 뒤이어 1497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다. 이후 정향, 생각, 계피 같은 허브들이 유럽으로 수입되었다.
이런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가톨릭 수도원 등에서 허브를 재배했고, 의학교가 세워졌으며, 14~17세기의 흑사병과 경제위기 등을 겪었다. 16세기에 스페인은 잉카제국에 당도했고, 18세기로 넘어오면서 약초학의 전성기가 열린다. 1827년 버드나무 껍질에서 살리실산을 발견하고, 1860년엔 코카잎의 코카인을 발견하고, 1899년에는 이런 성분들을 추출하고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마취제와 진통제로 더 많은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추출, 합성 기술로 제약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생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로버트 코흐19세기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의 의사이자 미생물학자인 로버트 코흐와 함께 세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코흐는, 탄저병, 결핵균, 콜레라균 등을 발견했으며, 이 둘은 모두 세균 감염설을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로부터 추출해낸 페니실린이 마법탄환이라고 불리면서 또 한번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게 된다. 현대 의학의 3요소로 불리는 Pharacy, Radiology and Operation은 이 시기 부터 정립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환경과 면역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성인병과 스트레스성 질환들이 생겼으며, 세균유래설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미생물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연주의적 움직임과 히피 문화가 생겼으며 반전운동 등과 함께 본초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런 허브를 현대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을 뿐 이 약이 어디서 추출한 어떤 성분으로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다. 시중에 판매되는 거의 대부분의 약이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토대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 식물로 치료할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여유가 될 때는 한 번쯤 허브와 녹색의학에 대해 공부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어서)